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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난 이유 (Camino de my life)

by 산만한 떡볶이 2023. 1. 3.

1. 왜 하필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나  

  산티아고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듣기만 해도 모험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모험가들, 여행자들, 순례자들이 그 길에 모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꼭 그 길이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여행자였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적당한 고난을 바랐습니다. 처음 결심을 할 때만 해도 모험가가 되고 싶지만, 현생에 치이며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모험보다는 여행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스스로한 결심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어떤 상황에도 내 마음이 최우선일 것"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를 끝까지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남들이 30km를 걷는다고 해서 따라 걷지 않을 것. 하지만 물집이 생겨도 내가 목표를 달성하고 싶은 날에는 끝까지 해낼 것. 까미노를 걷는 이유가 고난 체험이 아닌 행복 찾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행복찾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편안한 휴양지를 갈 수도 있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대륙을 건널 수도 있습니다. 또 제니퍼로페즈 주연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Eat, pray and love)' 와 같이 낯선 환경에서 한달 살기, 명상 여행 등을 떠날 수도 있습니다. 

 

 5년 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모아둔 목돈과 퇴직금이 있으니 저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말 그대로의 자유인이었습니다. 그것도 시간, 돈, 젊음을 모두 가진 자유인이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까미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까미노 이후 유럽에서 만났던 대학생 친구들이 모두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같이 까미노를 걷는 것이 본인의 버킷리스트라고 합니다. 그럴 때 제가 이야기하는 건 "어쩌면 까미노를 가지 않는 인생이 행복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입니다. 힘든 삶에서 더 이상 무엇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까미노가 저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도 그 친구들처럼 까미노는 수많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습니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즐기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까미노는 그 자체로 너무나도 행복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떠나기를 결심했던 당시에는, 내가 나를 위해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자, 가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자라면 매일 신체를 혹사시키고, 심한 부상도 빈번히 발생하는 한 달여의 시간을 후회하지 않을지 꼭 한번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지금이 아니더라고 길은 어디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 필요할 때 당신에게도 떠날 용기를 주는 곳으로서 까미노가 남기를 바랍니다.

 

2. 나는 그 길에서 무엇을 바랐나

제가 순례길을 떠나며 얻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습니다. 

한마디로 "나 다워지기"

 

1. 내 삶의 주인은 나

 매일 가야할 거리와 쉬어갈 곳, 그날의 숙소, 식당을 결정하는 하루를 반복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타인의 시선, 오전 7시에 집을 나서 밤 12시에야 귀가하는 삶, 주변인의 가스라이팅에 시달리며 내 인생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막 사는 인생인데 재미도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 모든 시간을 내가 결정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을 온전히 존중받고자 했습니다. 그러기에 까미노는 참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혼자 걷는 길에서 나만 나를 존중하면 되니까요. 

 

2.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 법

 후회와 불안. 제가 지난 해 여름부터 올해 봄까지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선택하지 못하고, 떠밀려 지나간 시간의 결과는 최악으로 치닫았습니다. 그러니 또 과거를 후회하며 뭐라도 할 걸, 이렇게 할 걸이라는 자책만 늘어갔습니다. 또 내가 어떻게 해도 안될거야 라는 자기부정과 불안 역시 끊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밝은 게 문제였을 정도로 긍정적이고 활달하던 제가, 불과 몇 달만에 직장에서는 남의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사는 게 당연해졌습니다. 이를 극복할 수 없으면 끊어내야 겠다고 결심하고 그 다음날 바로 퇴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날로 순례길로 떠나는 2주 뒤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결정 조차 하지 않은 일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결정을 내린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은 결정하고 후회하기, 끝은 결정하고 후회하지 않기로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앞서 1번에서 말한 것처럼 순례길에서 제가 결정할 일들은 매일 반복됩니다. 그렇기에 어제 일에 후회두지 않고, 빠르게 오늘의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제 머문 숙소에 문제가 있다면, 불평보다는 앞으로 숙소를 고를 조건을 추가했습니다. 지금 되돌아 보면, 후회할 시간은 너무도 아깝고 에너지는 더 아깝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사고를 만드는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3. 세상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좋은 사람을 만나 치유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분명 사람을 믿고 귀하게 여기던 제가 사람에게 지쳐가고,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타인으로 인한 문제가 나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본래의 저로 돌아가기 위해 편견없이, 대가없이 함께 걷고 소통하는 시간은 너무도 절실했습니다.

 까미노는 그 길위에 천사들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방향을 보고 걸어가는 순례자 모두가 친구이자 가족인 길입니다. 저 역시 떠나기 전에는 막연히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천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있고,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구 중에는 11살도 50대도 70대도 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이야기로 제게 용기를 주고 위로를 줍니다. 또 저 역시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듭니다. 

 

 

 글을 쓰다보니 제가 길을 떠나며 바랐던 목표와 결과가 섞여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 제가 떠난 목적을 달성했다는 증거인 것 같아 기껍습니다. 

 

 재밌는 점은 까미노를 떠난 이유는 밤새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긴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순례자들끼리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너는 왜 까미노에 왔니?"입니다. 사회에서 무엇을 하다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 질문 하나로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같이 걸으며 그 이야기를 할 시간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즐거운 길이 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순례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